학기 말마다 저는 교무실 모니터 앞에서 이상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고등학생이 썼다고 보기 어려운 유려한 문장, 현학적인 비유, 흠잡을 데 없는 논리 구조. 솔직히 처음에는 '이 아이가 이렇게 성장했나' 싶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면대면으로 "이 문장에서 핵심 논지가 뭐야?"라고 물으면, 당황하며 얼굴을 붉히는 제자와 마주치는 순간 — 그 뿌듯함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생성형 AI가 교실 안 평가 체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지금, 저는 이 상황을 단순한 부정행위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사고의 외주화, 교실 안에서 목격한 것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이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퍼졌습니다. 수행평가 주제를 던지면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향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꺼냅니다.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제가 나눠준 채점 기준표(루브릭)까지 AI에 학습시켜 'A급 보고서'를 단 몇 초 만에 뽑아냅니다. 루브릭이란 평가 항목별 기준을 세분화한 채점표를 뜻하는데, 이걸 AI에 통째로 입력하면 AI는 채점자의 취향에 맞춰 최적화된 텍스트를 생성해냅니다. 교사가 만든 도구가 교사를 무력화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게 고등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서울대 공과대학이 소속 교수 1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73.6%가 생성형 AI 대중화 이후 과제 수행 과정의 비윤리적 행위가 증가했다고 답했습니다(출처: 한국경제). 컴퓨터공학부 한 수업에서는 수강생 62명 중 32명, 즉 절반이 넘는 학생이 AI 대필로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현장에서 치르는 퀴즈나 지필고사에서 부정행위가 증가했다는 응답은 10~17%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 숫자의 대비가 저에게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결국 감시가 없는 공간, 즉 집에서 완성해 제출하는 결과물 중심 평가가 구조적으로 AI 대필을 허용해버린 셈입니다.
"사고의 외주화(cognitive outsourcing)"라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스스로 생각해야 할 뇌의 작업을 외부 도구에 통째로 맡겨버리는 현상입니다. 계산기가 등장했을 때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지만, 생성형 AI는 수준이 다릅니다. 계산기는 계산을 대신했지만, AI는 개념을 연결하고, 논리를 전개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까지 대신합니다. 인간이 언어를 통해 사유하는 그 과정 자체를 AI가 가져가버리는 것입니다.
- 서울대 공대 교수 73.6%: AI 대중화 후 과제 비윤리적 행위 증가 응답
- 컴퓨터공학부 수업: 수강생 62명 중 32명 AI 대필 적발
- 지필고사·퀴즈 부정행위 증가 응답은 10~17%에 불과
- 채점 기준표(루브릭)를 AI에 학습시키는 방식까지 이미 학생들 사이에 확산
과정 중심 평가와 구술 평가, 현실적인 답이 될 수 있을까
저는 지난 학기부터 독서 감상문 수업에 즉석 구술 확인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제출된 글에서 핵심 문장 두 개를 골라 "이 표현을 왜 썼는지 지금 말해봐"라고 묻는 방식입니다. 처음엔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스스로 쓴 학생은 막힘 없이 설명했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두세 마디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완성된 텍스트로는 절대 보이지 않던 차이가 대화 30초 만에 드러났습니다.
구술 평가(oral assessment)란 학생이 제출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교사가 직접 질문을 던지고 학생의 이해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평가 방식입니다. 결과물의 완성도가 아닌, 학생이 그 내용을 실제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봅니다. 호주 시드니대는 이미 이 방식을 도입해, AI 활용을 허용하는 '개방형 평가'와 구술 평가를 병행 운영하고 있습니다(출처: 시드니대학교). AI의 도움을 받아 과제를 작성하더라도, 그 내용을 학생이 실제로 소화했는지는 대화로 확인하겠다는 것입니다.
"AI를 활용하면서도 사고를 외주화하지 않고, 생각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교육과 평가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서울대 공대 학장의 발언은 저도 공감하는 방향입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는 있습니다. 한 교사가 수십 명을 개별 구술 평가하는 건 시간과 체력의 문제가 먼저 옵니다. 이 점에서 저는 두 가지 시각이 팽팽하게 부딪힌다고 느낍니다.
과정 중심 평가(process-based assessment)를 지지하는 쪽은, 결과물이 아닌 학생이 개념을 다듬어가는 과정을 관찰해야 진짜 학업 성취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초고→피드백→수정→발표'처럼 단계별로 학생의 사고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겠다는 것입니다. 반면 현실적 제약을 강조하는 쪽은, 교사 1인이 감당할 수 있는 평가 부담의 한계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둘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향은 과정 중심이 맞지만, 이를 실현할 제도적 여건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개별 교사의 소진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AI로 쓴 과제물을 교사나 교수가 실제로 구별할 수 있나요?
A. 텍스트 자체만으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서울대 교수도 AI가 쓴 감상문에 9.5점을 준 사례가 있을 만큼, 완성된 결과물로 판별하는 것은 사실상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제 경험상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출물을 보고 바로 구술로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30초 대화가 글 전체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Q. AI를 활용해서 과제를 내면 무조건 부정행위인가요?
A. 이 부분은 학교와 교수자마다 기준이 다르고, 저도 명확히 선 긋기 어려운 문제라고 봅니다. AI를 자료 탐색이나 초안 아이디어 정리에 쓰는 것과, AI가 사실상 전체를 써주는 것은 다릅니다. 중요한 건 학생 본인이 그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내면화했느냐이고, 그 기준으로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과정 중심 평가로 바꾸면 학생 부담이 더 커지지 않나요?
A. 오히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AI 대필로 이어지는 측면도 있거든요. 과정 중심으로 전환하면 투박하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그 과정 자체에 점수를 주는 방식이 됩니다. 제 경험상 이 방식에서 학생들이 오히려 더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꺼냈습니다.
Q. 초·중·고등학교에서도 구술 평가가 가능한가요?
A. 가능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교사 한 명이 30명 이상을 개별 구술 평가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전체 구술보다는 제출 직후 무작위로 5~6명을 골라 짧게 확인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억제 효과가 꽤 있었습니다. 전면 도입보다는 점진적으로 시도해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결론
정리하면, 지금 교육 현장이 맞닥뜨린 문제는 AI 그 자체가 아니라 결과물만 보는 평가 구조입니다. 완성도 높은 텍스트에 점수를 주는 한, AI는 언제나 그 구멍을 파고듭니다. 저는 이 상황을 교사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구술 평가와 과정 중심 관찰 평가를 제도화하고, 그것이 가능한 수업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학교와 교육 당국의 역할입니다.
학생들이 투박하더라도 자기 언어로 생각을 세워 올리는 그 과정 — 저는 그게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AI가 써준 매끄러운 문장보다, 더듬더듬 말하는 아이의 30초짜리 구술이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낼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지금 교육 현장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