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시 원서 접수 기간 내내 상담실에 앉아 있었는데, 수도권 학생이 부산대나 충남대를 1지망으로 써넣는 모습이 한두 건이 아니었습니다. 2027학년도 수시모집에서 9개 지역거점 국립대에 지원한 수도권 고교 출신 학생이 5만 2,062명으로, 전년 대비 12% 늘어났습니다. 상담 현장의 체감과 통계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진 적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없었습니다.

수도권 학생이 지거국으로 향한 배경
일반적으로 지역거점 국립대(지거국)는 수도권 학생에게 '인서울' 실패 시 마지못해 고려하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저도 10년 넘게 진학 상담을 해오면서 그 공식이 흔들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습니다. 학생들이 먼저 부산대 스마트가전공학과, 충남대 반도체학과를 검색해서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요.
이 변화의 직접적인 기폭제는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입니다. 여기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란 지역거점 국립대 9곳을 서울대 수준의 연구·교육 인프라로 끌어올리겠다는 중장기 국가 프로젝트를 의미합니다. 정부는 부산대·충남대·전남대를 1차 패키지 지원 대학으로 선정하고, 2030년까지 5년간 학교당 약 700억 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을 밝혔습니다(출처: 한국경제).
여기에 등록금 무상화 정책이 더해지면서 경제적 유인이 현실감 있게 작동했습니다. 등록금 무상화란 지역거점 국립대 재학생의 등록금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는 정책으로, 연간 400만~600만 원 수준의 비용이 사실상 0원이 되는 구조입니다.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4년치 등록금 부담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수도권 학생 가정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습니다.
- '서울대 10개 만들기' 패키지 1차 선정: 부산대·충남대·전남대
- 학교당 약 700억 원, 2030년까지 5년간 지원 예정
- 등록금 무상화로 연간 400만~600만 원 부담 소멸
- 2027학년도 수도권 지원자 전년 대비 12% 증가, 5만 2,062명
취업 생태계가 실제로 달라졌는가
제가 상담실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지방 가면 취업은요?" 예전엔 이 질문이 곧 지방 대학을 포기하는 신호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질문 뒤에 "LG전자 계약학과 있잖아요"라는 말이 바로 따라붙었습니다.
부산대 스마트가전공학과가 그 상징입니다. 이 학과는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로, 입학과 동시에 졸업 후 LG전자 취업이 보장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란 기업이 학과 운영비를 지원하는 대신 졸업생을 우선 채용하기로 사전 약정한 학과를 뜻합니다. 20명 모집에 603명이 지원해 경쟁률 30.15 대 1을 기록했고, 이 수치는 웬만한 수도권 인기 학과 경쟁률과 맞먹습니다. 제 경험상 지방 국립대 단일 학과 경쟁률이 이 수준을 넘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지역 산업 생태계 확장 기대감도 실질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중 피지컬 AI(Physical AI) 분야를 보면, 전북 새만금에 로봇 파운드리와 부품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대구·경북의 기존 자동차·가전 부품업체가 모터·감속기·센서 등 로봇 핵심 부품 생산 기지로 전환되도록 지원합니다. 피지컬 AI란 소프트웨어 중심의 AI를 넘어 실제 물리 환경에서 작동하는 로봇·제조 시스템에 AI를 결합한 개념입니다. 전북대 수도권 지원자가 36.1%, 경북대가 19.2%, 경상국립대가 41.7% 각각 늘어난 배경에는 이 산업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한국경제).
그리고 상담 현장에서 저는 이런 변화를 단순한 유행으로 보지 않습니다. '수시 납치'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수시 납치란 수시모집에 합격하면 정시모집에는 지원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제도적 구조를 의미합니다. 정시라는 보험을 완전히 포기하면서까지 지거국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한 등록금 절감 그 이상의 진로 확신이 뒷받침됐다는 뜻입니다.
지역 균형이냐, 새로운 서열화냐
이 흐름을 마냥 반가운 눈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정책의 수혜가 모든 지역에 고르게 돌아간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그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충북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국교통대와의 통합 추진이 내부 갈등으로 지연되자 글로컬대학 지정이 취소됐고, 그 직후 수도권 지원자가 전년 대비 21.8% 급감했습니다. 여기서 글로컬대학이란 교육부가 지역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정·지원하는 거점 대학 육성 프로그램으로, 지정 여부에 따라 수백억 원의 재정 지원 격차가 발생합니다. 재정 지원 하나가 끊기자마자 지원자가 20% 이상 빠진다는 것, 이게 제가 가장 우려하는 지점입니다.
거점 국립대에 혜택이 집중될수록 지역 사립대의 공동화는 가속됩니다. 올해 반수생은 역대 최대 수준인 약 1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중 상당수는 지방 사립대에 재학 중인 수도권 출신 학생들로 분석됩니다. 등록금 무상화라는 당근을 쫓아 지거국으로 옮기려는 반수 시도가 이미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역 사립대 입장에서는 학생 유출과 재정 악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중고입니다.
정부가 거점 국립대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졸업 후 학생들이 그 지역에 남느냐는 것입니다. 지자체 중심의 양질의 일자리와 주거·문화 등 정주 여건이 완결형으로 갖춰지지 않으면, 졸업장만 지방에서 받고 다시 수도권으로 유턴하는 구조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역 균형 발전의 목표가 진학 통계 개선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거점 국립대 투자와 지역 사립대 상생, 그리고 정주 환경 조성이 하나의 완결된 생태계로 묶여야 한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수도권 학생이 지거국에 수시 지원하면 정시는 못 쓰나요?
A. 맞습니다. 수시에 합격하면 정시 지원이 전면 차단되는 '수시 납치' 구조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리스크 때문에 수도권 학생들이 지거국 수시 지원을 꺼렸는데, 올해는 그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지원한 학생이 5만 명을 넘었습니다. 그만큼 채용 보장이나 등록금 무상화의 유인이 강하게 작동했다는 방증입니다.
Q. 부산대 스마트가전공학과는 정말 LG전자 취업이 보장되나요?
A.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입학 시점에 기업과 약정이 체결되는 구조입니다. 학과 유지와 졸업 요건 충족을 전제로 LG전자 채용과 연계됩니다. 20명 모집에 603명이 지원해 3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한 것만 봐도, 이 구조를 신뢰하는 수험생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Q. 지거국 등록금 무상화는 모든 학생에게 해당되나요?
A. 정책 적용 범위와 조건은 대학별·시행 시기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발표된 기조는 지역거점 국립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소득 기준이나 학년 적용 여부는 각 대학의 공지와 교육부 발표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정책은 발표와 실제 적용 사이에 세부 조건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충북대 지원자가 줄어든 이유가 뭔가요?
A. 한국교통대와의 통합 추진이 내부 갈등으로 지연되면서 글로컬대학 지정이 취소됐기 때문입니다. 글로컬대학 지정 여부는 수백억 원 단위의 재정 지원과 직결되는데, 지정이 취소되자 수도권 지원자가 약 22% 급감했습니다. 재정 지원 하나가 끊기자마자 지원자가 이탈하는 이 사례는, 현재의 지거국 인기가 정책 수혜에 얼마나 민감하게 연동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론
수시 상담실에서 제가 직접 목격한 이 변화는 분명 실재합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지거국 첨단학과를 검색하고, 수시 납치 리스크를 감수하며 지원서를 넣는 모습은 오랜 관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등록금 무상화와 채용조건형 계약학과가 만들어낸 실질적 유인이 그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 흐름이 지속 가능한지의 여부입니다. 충북대 사례에서 봤듯이, 정책 지원이 끊기는 순간 지원자는 썰물처럼 빠집니다. 거점 국립대 중심의 집중 투자가 지역 사립대의 연쇄 공동화를 부르지 않으려면, 상생형 고등교육 연계망을 동시에 설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거국 졸업생이 그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일자리와 정주 여건이 완결형으로 갖춰져야 이 변화가 진짜 지역 균형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