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조사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교무실에서 겪는 그 무거운 순간이 있습니다. 진로를 향해 눈을 빛내는 학생이 "선생님, 제가 가고 싶은 학과에서 이 과목 이수를 권장하는데 왜 우리 학교에는 안 열리나요?"라고 물어올 때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 이런 질문이 줄어들 거라 기대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소규모 학교일수록 개설 과목이 더 적어지고, 보완책이라던 공동교육과정조차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통계가 그 경험을 숫자로 확인해 주었습니다.

과목 선택권, 학교 규모가 갈라놓는다
2024년 1학기 기준, 전국 일반고 1,577곳에서 신설된 1~2학년 고교학점제 과목은 학교당 평균 28.6개였습니다. 그런데 12학급 이하 소규모 학교 231곳만 따로 보면 평균 25.8개로, 나머지 1,346곳(29.3개)보다 3.5개 적었습니다(출처: 경향신문). 3개 차이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교육과정 편제표를 짜봤는데, 선택과목 3개의 차이는 학생 한 명이 자신의 진로 방향을 담아내느냐 못 담아내느냐를 가르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격차는 2학년에서 두드러졌습니다. 1학년은 소규모 학교 11.3개, 일반 학교 11.5개로 큰 차이가 없었는데, 2학년은 14.5개 대 17.8개로 벌어졌습니다. 고교학점제에서 2학년은 선택과목 수강이 본격화되는 시점입니다. 여기서 선택과목이란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직접 골라 수강하는 과목을 말하는데, 이 시점의 격차는 곧 대입 준비의 격차로 이어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문제입니다. 1학년 때 0.2개 차이는 체감이 없지만, 2학년 3.3개 차이는 학생들이 실제로 피부로 느낍니다.
지역별로 보면 인천의 격차가 가장 심각했습니다. 인천 소규모 고교 8곳의 평균 신설 과목은 18.6개로, 다른 학교 평균(29.1개)보다 무려 10.5개나 적었습니다. 강원(7.4개), 전북(7.1개), 충남(6.9개)이 뒤를 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지역도 이 수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이라, 통계를 처음 접했을 때 "이게 바로 우리 이야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동교육과정, 보완책이라기엔 너무 미약하다
교육부는 소규모 학교 학생의 과목 선택권 보완 수단으로 공동교육과정을 제시해 왔습니다. 공동교육과정이란 단위 학교가 개설하기 어려운 과목을 인근 학교나 온라인으로 연계해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소규모 학교에서 이를 실제로 개설한 비율은 16.7%에 그쳤습니다. 소규모가 아닌 학교의 47.7%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입니다. 240곳 중 40곳만이 공동교육과정을 마련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공동교육과정은 다른 학교가 개설한 수업에도 학생이 참여할 수 있어, 설치 비율만으로 개인의 실제 접근성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학생들을 인근 학교 공동교육과정 수업에 연결해 보려 했을 때, 이동 시간, 일정 충돌, 학부모 동의 절차 등 현실적인 장벽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숫자 위로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는 걸 그때 절감했습니다.
- 소규모 학교(12학급 이하) 평균 개설 과목: 25.8개 vs 일반 학교 29.3개 (3.5개 차이)
- 2학년 선택과목 격차: 소규모 14.5개 vs 일반 17.8개 (3.3개 차이)
- 인천 소규모 학교 격차 최대: 18.6개 vs 29.1개 (10.5개 차이)
- 공동교육과정 개설 비율: 소규모 16.7% vs 일반 47.7%
교육 격차가 대입 격차로 직결되는 이유
고교학점제의 철학은 분명히 옳습니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게 과목을 선택하고, 그 이수 이력이 학생부에 쌓여 대학에 전달되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맞물리면서 소규모 학교 학생에게 불리하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이란 교과 성적 외에 비교과 활동,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수강 과목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대입 전형인데, 최근 대학들이 이른바 '전공 적합성', 즉 지원 학과와 연계된 과목을 얼마나 이수했는지를 핵심 평가 요소로 삼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수시 컨설팅 과정에서 학생이 원하는 학과의 권장 이수 과목과 실제 개설된 과목 목록을 대조하면 소규모 학교 학생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화학II', '생명과학II', '심화 국어' 같은 전문교과 또는 융합선택 과목들이 아예 개설되지 않아 이수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여기서 전문교과란 특정 분야의 심화된 내용을 다루는 과목으로, 자연계열 또는 특수 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에게 사실상 필수 이력에 가깝습니다(출처: 교육부).
일반적으로 교육부는 단위 학교가 교원을 직접 채용해 과목을 개설하면 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소규모 학교는 기간제 교사 한 명을 더 채용할 예산도, 소인수 과목을 운영할 행정 여력도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학교 규모가 작을수록 교원 1인이 감당하는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신규 과목 개설에 투입할 여력은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구조적인 한계를 단위 학교 역량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실질적인 해법: 교육청 주도의 인프라 재편이 필요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육청이 상시 강사 인력을 확보하고 학교에서 필요한 강사 신청을 받아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이 방향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봅니다. 단위 학교 중심의 채용 방식은 소규모 학교가 스스로 해결하라는 압박에 가깝습니다. 교육청 단위의 순회 전담 정규 교원제, 즉 여러 학교를 이동하며 특정 과목을 전담하는 교사를 교육청이 직접 고용하고 배치하는 제도가 구축된다면, 소규모 학교 학생들도 전문 교원에게 심화 과목을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더불어 온라인 거점 공동교육과정 플랫폼을 광역 단위로 확대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현재의 공동교육과정은 물리적 이동이 전제되는 경우가 많아 농산어촌 학생들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온라인 방식으로 소인수 과목을 광역 단위로 묶어 운영한다면 수강 인원 확보와 교원 배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현행 방치 상태보다는 분명 나은 방향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고교학점제에서 소규모 학교는 어느 정도 규모를 말하나요?
A. 교육부 기준으로 12학급 이하인 일반고를 소규모 학교로 분류합니다. 2024년 1학기 기준 전국 일반고 1,577곳 중 231곳이 이에 해당하며, 주로 농산어촌 및 도심 외곽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Q. 공동교육과정이 있으면 소규모 학교 학생도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지 않나요?
A. 제도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이 적지 않습니다. 소규모 학교의 공동교육과정 개설 비율이 16.7%에 불과하고, 개설된 경우에도 학생이 실제로 접근하려면 이동 거리, 일정 조율, 학부모 동의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통계상의 접근성과 실제 접근성 사이의 간극이 상당히 큽니다.
Q. 고교학점제 과목 선택권 격차가 대입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나요?
A.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대학들이 전공 적합성, 즉 지원 학과와 연계된 과목 이수 여부를 중요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해당 과목이 학교에 개설되지 않으면 이수 이력 자체를 만들 수 없어 직접적인 불이익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자연계열이나 특수 계열 지원자에게 심화 전문교과 이수 여부는 평가의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Q. 교육청 주도 순회 교원제는 실현 가능성이 있나요?
A. 이미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소규모 학교 지원을 위한 순회 교사 파견 사례가 존재합니다. 다만 현재는 산발적이고 임시방편적인 운영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정규 제도로 확립하고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의지와 예산만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현실화 가능한 방안으로 보입니다.
결론
고교학점제는 분명 옳은 방향의 제도입니다. 학생이 스스로 과목을 선택하고 진로를 설계한다는 철학 자체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교무실에서 직접 마주한 현실은, 그 철학이 모든 학생에게 균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지역 어느 규모의 학교에 다니느냐가 과목 선택권을 좌우하고, 그것이 고스란히 대입 경쟁력의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는 제도가 표방하는 공정함과 거리가 멉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교육부가 단위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교육청 단위의 순회 전담 정규 교원제와 광역 온라인 공동교육과정 플랫폼을 실질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소규모 학교 학생들도 자신이 필요한 과목을 차별 없이 이수할 수 있는 공교육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고교학점제는 결국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는 제도로 기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교사, 학부모, 교육 관계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