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형 문항을 직접 출제하고 채점해본 교사들조차 67%가 수능 도입에 반대했습니다. 전교조가 전국 고교 교원 1,3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전체 반대율은 70.4%에 달했습니다. 채점 기간마다 교무실이 민원 전화로 마비되는 현장을 직접 겪은 입장에서, 이 숫자가 왜 나왔는지 누구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술형을 직접 출제해본 교사가 반대하는 이유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지요. "서술형 평가를 매일 쓰는 교사들이라면 수능에도 당연히 찬성하지 않을까?"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전교조 설문에 따르면 수행평가에서 서·논술형을 활용하는 교원 비율은 90.8%에 달합니다. 그런데 이들 중 69.5%가 수능 도입에는 반대했습니다. 정기고사에서 서술형을 직접 출제한 교사들도 67.3%가 손사래를 쳤습니다(출처: 문화일보). 실제로 써본 사람일수록 더 반대하는 역설, 이건 단순한 거부감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으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학교 내신에서 서술형 한 문항을 출제하고 나면, 부분점수 0.5점을 두고 이의 제기가 쏟아집니다. 퇴근 후, 주말까지 반납하며 채점 기준표를 수십 번 고쳐 쓴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 규모가 50만 명짜리 국가시험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채점 기준의 일관성 확보, 즉 동일한 답안에 대해 채점자마다 동일한 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 평가 신뢰도를 담보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제 경험상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채점 공정성, 현장에서는 이미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번 설문에서 실제 평가 업무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힌 항목 1위는 공정성·객관성에 대한 민원 부담으로, 응답자의 75.6%가 이를 선택했습니다. 채점 공정성이란, 쉽게 말해 누가 채점하더라도 같은 답안에는 같은 점수가 나와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선다형 문항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논술형에서는 이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한 교사가 설문 자유응답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정답이 있는 서술형 평가는 평가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고, 정답이 없는 평가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제 경험상 이 딜레마는 정말 뼈저립니다. 정답을 명확히 정해두면 결국 암기형 서술과 다를 게 없고, 열린 답안을 허용하면 채점자의 주관이 개입하는 순간 불복 민원이 터져 나옵니다.
AI 채점 보조 시스템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현실은 냉정합니다. AI를 교사 채점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응답은 60.0%였지만, AI가 독립적인 최종 채점까지 맡을 수 있다고 답한 교사는 고작 4.0%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서 AI 독립 채점이란, 교사 검토 없이 AI가 단독으로 최종 점수를 확정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기술적 검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국가시험에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 공정성·객관성 민원 부담: 75.6% (1위)
- 각종 지침·규제 부담: 52.2% (2위)
- 학생 수에 따른 채점 시간 부족: 40.1% (3위)
- AI 독립 최종 채점 수용 의사: 4.0%에 불과
사교육 격차, 대치동만 웃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이 가져올 가장 심각한 문제로 현장 교사들이 꼽은 것은 사교육 확대였습니다. 무려 94.3%가 사교육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습니다. 채점 공정성 논란과 지역 간 교육격차 확대 우려도 각각 93.0%에 달했습니다.
이 수치가 왜 의미 있느냐면, 서·논술형 평가는 단순 지식 암기가 아닌 논리적 구성력과 표현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은 혼자 책상에 앉아 키우기 어렵고, 전문적인 첨삭 지도를 반복해야 단기간에 향상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서술형 답안을 잘 쓰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에서 논술 첨삭을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공교육에서 이를 감당하기에는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현실적으로 너무 많습니다.
결국 고액 첨삭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사이의 격차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교육 형평성(educational equity), 즉 지역과 가정 환경에 관계없이 동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이 수능 서·논술형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는 과장이 아닙니다. 전국 단위 국가시험의 성격상, 지방 소도시 학생과 서울 강남 학생이 같은 출발선에 서야 한다는 전제가 흔들리는 것입니다(출처: 교육부 공식 사이트).
형식 바꾸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육 당국이 서·논술형 수능을 밀어붙이는 명분은 미래 역량 함양입니다. 객관식 5지선다형이 측정하지 못하는 사고력, 표현력, 창의성을 평가하겠다는 취지 자체는 이해합니다. 제 경험상 이 문제의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선다형만으로는 진짜 실력을 보기 어렵다는 것,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순서입니다. 상대평가(norm-referenced evaluation), 즉 응시자 집단 내 서열로 합격·불합격을 결정하는 방식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주관식 채점을 도입하면, 공정성 논란은 피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상대평가란, 내가 몇 점을 맞았느냐가 아니라 다른 수험생 대비 내 순위가 어디냐로 결과가 결정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 구조에서 채점자의 주관이 조금이라도 개입되는 순간,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복은 사회적 갈등으로 증폭됩니다.
형식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것은 구조입니다. 대입의 과도한 서열 경쟁 완화, 공교육 내 과정 중심 평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 구축이 선행되지 않으면, 서·논술형 수능은 또 하나의 설익은 실험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장 교사 10명 중 7명이 반대하는 정책이라면, 교육부는 그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여 전면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수능에 서논술형이 도입되면 어떤 과목에 적용되나요?
A. 아직 구체적인 적용 과목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교육부가 검토 중인 단계이며, 도입 범위와 방식은 추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지금 단계에서 특정 과목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Q. AI가 수능 서논술형 채점을 대신할 수 있지 않나요?
A. 현장 교사들의 판단은 회의적입니다. AI를 보조 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응답은 60%였지만, AI가 독립적으로 최종 채점까지 맡길 수 있다고 답한 교사는 4%에 불과했습니다. 기술적 검증과 사회적 합의 없이 도입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큰 상황입니다.
Q. 교사들이 학교 내 서술형 평가는 하면서 수능 도입은 왜 반대하나요?
A. 학교 내 평가와 국가 대입 시험은 차원이 다릅니다. 내신 서술형도 민원과 이의 제기가 만만치 않은데, 50만 명 이상이 응시하는 수능에서는 그 갈등이 수십 배로 증폭됩니다. 현장을 겪어봤기 때문에 더 강하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Q. 서논술형 수능이 사교육을 늘린다는 근거가 있나요?
A. 설문에 참여한 교사 94.3%가 사교육 확대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습니다. 서·논술형 답안 작성 능력은 반복적인 전문 첨삭 지도를 통해 빠르게 향상되기 때문에, 고액 논술 학원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각이 현장에서는 압도적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수능 서·논술형 도입은 방향이 아니라 타이밍과 순서의 문제입니다. 미래 역량을 측정하겠다는 이상은 이해하지만, 채점 공정성 확보 방안도, 사교육 격차 완화 대책도, 현장 교사들의 동의도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으로 보입니다.
제가 교단에 서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입시 제도는 한 번 흔들리면 그 여파가 수험생 개인의 인생에 직접 닿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교육부는 현장 교사 10명 중 7명이 내지르는 반대 목소리를 정치적 저항으로 치부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현장의 경험과 우려를 정책 설계에 진지하게 반영해야 합니다. 서·논술형 수능 추진이 계속된다면, 최소한 충분한 현장 검증과 공론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