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제자들이 "A 못 받으면 바보 소리 듣는다"고 할 때 절반쯤은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국 4년제 대학 졸업생의 53.4%가 백분율 90점 이상으로 졸업하고, 서울 주요 10개 대학에서는 95점 이상 최상위권도 35%에 육박한다는 국정감사 통계를 마주하고 나서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실감했습니다. 교단에 17년째 서 있는 교사로서, 이 수치 앞에서 적잖이 허탈했습니다.

성적 부풀리기, 숫자로 마주하다
스승의 날이나 방학마다 졸업생들이 교무실 문을 두드립니다. 명문대에 간 아이들일수록 학점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꺼냅니다. "교수님이 웬만하면 A 주세요. 취업이 걸려 있으니까요." 처음엔 그 말을 흘려들었는데, 직접 통계를 확인하고 나서는 더 이상 흘려들을 수 없었습니다.
국회 교육위원회가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00여 개 4년제 대학 졸업자 약 157만 명을 분석한 결과 백분율 점수 평균은 2021년 88.19점에서 2025년 89.45점으로 5년 연속 올랐습니다(출처: 서울신문 국정감사 보도). 90점 이상 졸업생 비율은 같은 기간 44.0%에서 53.4%로 치솟아, 2023년부터는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여기서 학점 인플레이션(Grade Inflation)이란, 학생들의 실제 학업 역량과 무관하게 전반적인 성적 수준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예전에는 B를 받아야 했을 수준의 과제물에 지금은 A를 주는 구조가 굳어진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현장에서 0.1점 단위 내신 경쟁을 지켜봐 온 입장에서,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 이상의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 2021년 90점 이상 졸업생 비율: 44.0% → 2025년: 53.4%
- 95점 이상 최상위권 비율: 9.9% → 18.1% (5년 만에 1.8배)
- 70점 미만 졸업자 비율: 사실상 0.2% 수준으로 자취를 감춤
- 5년 연속 백분율 점수 평균 상승 (88.19점 → 89.45점)
학벌 카르텔이 만든 또 다른 불평등
제가 직접 수치를 들여다봤을 때 가장 씁쓸했던 부분은 상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 사이의 격차였습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포함한 서울 주요 10개 대학의 90점 이상 졸업생 비율은 2021년 59.5%에서 2025년 72.3%로 껑충 뛰었습니다. 95점 이상 최상위권은 무려 16.9%에서 34.7%로, 5년 만에 두 배가 됐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경북 지역 대학의 90점 이상 비율은 39.8%, 전남·광주 지역은 42.2%에 머물렀습니다. 서울과 경북 사이의 격차만 27.2%포인트입니다. 성적표에 똑같이 '90점'이라고 적혀 있어도, 어느 대학에서 받은 점수냐에 따라 취업 시장에서 학생의 위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학벌 카르텔의 새로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벌 카르텔이란, 특정 학교 출신끼리 유무형의 네트워크와 기준을 공유하며 외부 집단에 대해 진입 장벽을 형성하는 구조적 현상을 뜻합니다. 성적 부풀리기가 수도권 상위권 대학에 집중될수록, 지방 대학 졸업생은 같은 노력을 해도 스펙 경쟁에서 처음부터 불리한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 이건 능력주의의 탈을 쓴 구조적 불평등입니다.
고등교육 평가가 길을 잃은 자리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성취평가제(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병행하면서도 학교생활기록부의 신뢰도를 지키기 위해 서술형 문항 하나, 성취도 평어 하나에 교사들이 치열하게 논의합니다. 성취평가제란 학생의 학업 성취 수준을 일정 기준에 따라 등급으로 나누는 평가 방식으로, 단순히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고등교육의 종착지인 대학에서는 이런 원칙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교사로서 허탈감을 느낍니다.
현재 교육부는 대학의 성적 평가 방식을 전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기고 있습니다. 별도의 전국 통일 기준이 없다 보니, 교수자 개인의 판단과 학과·대학의 분위기가 성적 분포를 사실상 결정합니다. 취업률이 학과 평가 지표와 연동되는 구조에서 교수가 후한 학점을 줄 유인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변별력(Discrimination Power)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평가 도구가 수행 수준이 다른 학생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구분해 낼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동일한 최상위 구간에 몰린 성적표는 변별력을 사실상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업의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는 성적표가 지원자의 역량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으니, 결국 별도의 채용 시험과 스펙 경쟁이라는 사회적 낭비가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출처: 교육부).
무너진 신뢰, 제도로 되살릴 수 있을까
대학 자율이라는 원칙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자율이 제 기능을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책무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현재처럼 성적 분포를 공시하더라도 비교 기준이나 최소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공시 자체가 형식에 그칩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서범수 의원이 지적했듯이, 교육부가 성적 평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대학별 성적 분포 공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타당합니다. 여기서 상대평가 기준이란, 특정 비율의 학생만이 최상위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성적 분포에 제한을 두는 방식입니다. 모든 과목에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무리가 있더라도, 적어도 학과·대학 단위의 성적 분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일정 기준 이상으로 쏠릴 경우 설명 의무를 부과하는 정도의 제도화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제가 오래 몸담아 온 고교 현장에서의 경험상, 평가 기준이 명문화되어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현장의 행동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기준이 있어야 교사도, 교수도, 학생도 그 기준 앞에서 정직해질 수 있습니다. 대학 강단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고교 3년간 0.1점을 두고 치열하게 싸워 온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서는 순간 평가의 엄밀성을 잃어버린 공간을 만난다면, 그 허탈감은 학생만의 것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 전체의 실패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학점 인플레이션이 왜 지금 더 심해졌나요?
A. 취업률이 학과 평가 지표와 연동되는 구조에서, 교수자가 후한 학점을 줄 유인이 구조적으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교육부가 대학 성적 평가를 완전히 자율에 맡겨두는 동안 이 흐름에 제동을 걸 장치가 없었고, 5년간 수치가 매년 오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Q. 상위권 대학일수록 학점이 더 높다는 게 사실인가요?
A. 통계상 사실입니다. 서울 주요 10개 대학의 90점 이상 졸업생 비율은 72.3%로, 전국 평균(53.4%)을 약 19%포인트 웃돌았습니다. 95점 이상 최상위권은 34.7%로 전국 평균(18.1%)의 약 1.9배에 달합니다. 제가 수치를 처음 확인했을 때 이 부분이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Q. 기업들은 실제로 대학 성적표를 안 믿나요?
A. 성적표의 변별력이 약해질수록 기업이 성적표보다 별도 채용 시험이나 직무 역량 검증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결국 학생 입장에서는 대학 학점 관리와 별개로 자격증·시험 준비에 이중으로 시간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Q. 교육부가 성적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해결되나요?
A. 가이드라인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현재처럼 아무 기준 없이 방치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제 경험상 현장에서 명문화된 기준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성적 분포 공시 의무화와 이상치 설명 의무 부과를 병행한다면 점진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결론
제가 이 통계 앞에서 느낀 감정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허탈함'입니다. 고교 현장에서 평가의 엄밀성을 지키기 위해 쏟는 에너지와, 대학에서 사실상 형해화된 성적 평가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습니다. 학점 인플레이션은 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공백이 낳은 구조적 결과입니다.
교육부가 대학 자율이라는 방패 뒤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성적 분포 공시의 실질적 강화, 상대평가 기준과 최소 학업성취도 가이드라인의 제도화가 필요합니다. 관련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대학알리미 공시자료와 교육부 발표를 꾸준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