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틀렸습니다. 교단에서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지도하면서도, 성실하게 문제집을 많이 푸는 아이가 결국 성적이 오를 거라는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2026 수능 만점자 최장우씨의 사례를 접하고 나서야 제가 놓치고 있던 결정적인 한 끗이 무엇인지 비로소 선명해졌습니다.

손부터 움직이는 공부, 왜 성적이 안 오를까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교무실 근처를 지나다 보면 매일 같은 장면이 반복됩니다. 책상 위에 문제집을 수십 권 쌓아두고,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이며 하루에 수백 문제를 소화하는 아이들입니다. 겉으로 보면 누구보다 성실한 학생들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필평가 성적표를 들고 상담실을 찾아올 때면, 기대에 못 미친 점수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문제를 많이 풀수록 성적이 오른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양치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양치기란 많은 양의 문제를 반복해서 기계적으로 풀어내는 학습 방식을 의미합니다. 빠른 속도로 유형을 익히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개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손만 바쁜 공부는 시험장에서 사고가 조금만 꼬여도 대응하지 못합니다.
'불수능'으로 불린 2026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최장우씨가 스스로 고백한 전환점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고1 2학기 중간고사에서 자신 있던 수학을 망친 뒤, 자신보다 문제집을 느리게 풀던 친구들이 시험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는 이상한 현상을 마주한 것입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풀었는데 성적이 따라오지 않았던 이유 — 그것이 바로 손이 머리를 앞서는 공부의 함정이었습니다.
- 기계적 반복(양치기)은 유형 숙달에는 효과적이나 응용력 향상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풀이 과정이 길고 산만할수록 실수 확률이 높아집니다
- "몇 번 풀어야 해요?"라는 질문 자체가 이미 방향이 틀린 질문입니다
메타인지가 성적을 바꾼 진짜 이유
최장우씨가 잘하는 친구들을 관찰하며 발견한 차이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한 풀이인데, 잘하는 친구들의 과정은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펜을 들기 전에 이미 머릿속에서 설계가 끝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저도 상담실에서 아이들의 오답 노트를 같이 들여다볼 때 같은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1등급 학생의 풀이 과정과 3~4등급 학생의 풀이 과정은 정답 여부를 떠나 밀도 자체가 달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Metacognition)와 연결됩니다. 여기서 메타인지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스스로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문제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왜 이 문제를 이렇게 풀었는가", "어느 단계에서 개념이 흔들렸는가"를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OECD의 학습 역량 연구(출처: OECD Education)에서도 자기 조절 학습 능력이 높은 학생일수록 학업 성취도와의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제가 직접 관찰한 사례 중에 인상 깊었던 경우가 있습니다. 3월에 전남대 정도의 성적이었던 한 학생이 이 방식으로 공부 방향을 바꾼 뒤 6월 모의고사에서 중앙대 수준으로 올라섰고, 결국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3개월 주기로 성적이 달라지는 경험을 직접 곁에서 지켜본 저로서는, 학습 방향의 전환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새삼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조절 학습(Self-regulated learning)이라는 개념도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계획-실행-점검-수정의 순환 구조 안에서 학습자 스스로가 주도권을 갖는 방식입니다. 최씨가 공부 효율이 오른다는 확신이 든 뒤 학생회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성적을 유지한 것도, 이 자기 조절 학습의 구조가 내면화됐기 때문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고민하는 공부로 전환하는 실전 방법
최씨는 "좋은 질문은 그 이유와 판단 기준을 묻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문제집을 몇 번 풀어야 하냐"는 외형적 질문 대신, "왜 이 유형에서 이 개념을 써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이 공부의 밀도를 바꿉니다. 저도 상담할 때 이 구분을 자주 씁니다. 외형을 묻는 아이와 이유를 묻는 아이의 성적 궤적은 반 학기만 지나도 눈에 띄게 달라지더라고요.
실제로 고민하는 공부로 전환하려면 풀이 방식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펜을 들기 전에 30초라도 "이 문제가 묻는 핵심 개념이 무엇인가"를 머릿속에서 먼저 정리하는 습관이 출발점입니다. 풀이 과정 중에는 각 단계가 앞 단계와 논리적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하고, 오답이 나왔을 때는 "계산 실수"로 넘기지 않고 "어느 개념에서 판단이 흔들렸는가"를 추적하는 것이 오개념 교정(misconception correction)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오개념 교정이란 잘못 형성된 개념 체계를 정확한 이해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의 수능 출제 기조(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를 보면, 단순 계산보다 개념 간의 연결과 적용 능력을 측정하는 문항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손보다 생각이 앞서야 한다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저는 공교육 현장에서 이 방향의 전환이 더디다는 사실이 늘 안타깝습니다. 학원의 불안 마케팅과 촉박한 내신 일정에 쫓기다 보면, 개념을 음미할 여유 없이 유형별 스킬 습득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그 구조 안에서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설계하는 힘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는 걸, 교단에 서있으면서 매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 시간에 풀이 과정을 의도적으로 느리게 가져가는 연습을 함께 하려고 합니다. 결과보다 과정의 논리 구조를 먼저 언어화하는 훈련이야말로, 시험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1등급의 기반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문제를 느리게 풀면 시험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요?
A. 일반적으로 빠르게 많이 풀어야 실력이 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풀기 전에 머릿속에서 설계가 끝난 학생은 막힘 없이 써 내려가기 때문에 오히려 전체 시간이 단축됩니다. 우왕좌왕하며 풀이를 고쳐 쓰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이 낭비됩니다.
Q. 메타인지 공부법은 어떻게 시작하면 되나요?
A. 오답 노트를 쓸 때 "틀린 이유"를 계산 실수가 아닌 개념 단위로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1번 공식을 몰랐다"가 아니라 "조건과 공식이 연결되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원인을 추적하는 습관이 메타인지 훈련의 출발점입니다.
Q. 학생회 활동이나 다른 활동을 병행해도 성적을 유지할 수 있나요?
A. 최장우씨의 사례를 보면 공부의 양이 아닌 효율이 핵심입니다. 자기 조절 학습이 내면화된 상태라면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줄어도 성적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학습의 질이 먼저 갖춰진 다음의 이야기이고,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을 줄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Q. 인터넷 강의나 학원을 바꾸면 성적이 오를까요?
A. "이 강의를 들으면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방향이 틀린 질문이라는 게 최씨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저도 같은 입장입니다. 강의나 교재는 도구일 뿐이고, 그것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성패를 가릅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공부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편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성적을 바꾼 한 끗은 '얼마나 많이 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생각하느냐'였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성실한 반복을 믿었지만, 실제로 변화를 만든 아이들을 가까이서 보며 그 믿음을 수정했습니다. 메타인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풀이 과정을 언어화하고, 오개념을 개념 수준에서 추적하는 습관이 쌓일 때 성적은 비로소 안정적으로 오릅니다.
수능까지 남은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질수록, 더 많은 문제를 더 빠르게 풀고 싶은 충동이 강해집니다. 그 충동을 잠시 내려놓고, 오늘 틀린 문제 하나를 개념 수준에서 끝까지 추적해 보는 것 — 저는 그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