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처음엔 논술 전형이 '내신도 아니고 수능도 아닌 제3의 활로'처럼 보인다는 학생들의 심리를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상담 책상 위에 연고대·서성한 논술 원서를 줄지어 올려놓는 아이들을 해마다 마주하면서, 제가 꺼내 드는 숫자들이 그 희망을 얼마나 차갑게 식히는지 직접 목격해왔습니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충족률이 40%에도 못 미친다는 데이터, 그리고 최저를 통과할 성적이면 이미 정시로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는 현실을 먼저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숫자가 말해주는 냉혹한 현실
논술 전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수능 최저학력기준입니다. 여기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이란 논술 고사 응시 자격이 아닌, 최종 합격을 위해 반드시 수능에서 일정 등급 이상을 받아야 하는 조건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논술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불합격이라는 뜻입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4개 영역 등급 합 8, 즉 '4합 8'이 최저 기준입니다. 4합 8이란 국어·수학·영어·탐구 네 영역의 등급을 합산했을 때 8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인데, 예를 들어 국어 2·수학 2·영어 1·탐구 3이면 합산이 8이 됩니다. 제가 직접 작년 합격자 데이터를 들여다봤을 때, 이 기준을 안정적으로 충족한 학생들은 정시로도 고려대에 지원 가능한 성적대였습니다(출처: 고려대학교 입학처).
성균관대학교는 3개 영역 등급 합 6, 즉 '3합 6'이 기준입니다. 3합 6이란 국어·수학·영어 중 상위 세 과목 등급의 합이 6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으로, 겉보기엔 고려대보다 쉬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기준 최저 충족률이 40% 미만이었습니다. 즉, 논술 시험장에 들어간 응시자 열 명 중 여섯 명이 최저에서 탈락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경험상 이 숫자를 보여줬을 때 학생들이 가장 먼저 표정이 굳어집니다.
서강대학교는 인문·자연 모두 3합 7에 한국사 4등급 이내를 요구하고, 한양대학교는 별도의 수능 최저 없이 논술 100%로 선발합니다. 한양대의 경우 수능 최저 부담이 없는 대신 실질 경쟁률이 훨씬 치열하고, 고사 시간이 90분으로 짧아 타임어택이 극심합니다. 수능 후 약 일주일의 준비 시간이 생긴다는 점에서 제가 그나마 현실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고 보는 전형이기도 합니다.
- 연세대: 2027학년도부터 최저 도입 예정, 수능 전 실시, 자연계열 통합과학 논술 부활
- 고려대: 4합 8, 수능 후 80분 고사, 인문 사회 전 과목·자연 기하/확통 고난도 출제
- 서강대: 3합 7, 고려대와 일부 시간 겹침, 수학 1등급 이상 안정권 학생에게 유의미
- 성균관대: 3합 6, 언어형·수리형 구분 모집, 작년 최저 충족률 40% 미만
- 한양대: 수능 최저 없음, 90분 타임어택, 자연계열 기하 출제 비중 높음
- 중앙대: 일반형 실질 3합 7(영어 2등급 1등급 간주), 창의형은 재학생 한정·최저 없음
논술 전형의 구조적 문제, 제가 현장에서 느낀 것들
논술 전형 준비를 권유받은 학생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패턴이 있습니다. 수능 파이널 시기인 9~10월에 논술 특강에 이끌려 들어갔다가 수능 리듬이 무너지고, 결국 수능 최저도 못 맞추고 전형료와 시간을 모두 날리는 경우입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뼈아픈 사례들이 해마다 반복됩니다.
연세대학교 논술은 수능 전에 실시되며, 2027학년도부터 최저학력기준이 도입됩니다. 즉 올해(2026학년도)가 수능 미응시자도 지원할 수 있는 마지막 해입니다. 그런데 자연계열은 통합과학 논술이 부활했습니다. 통합과학 논술이란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등을 하나의 맥락 안에서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서술하는 방식인데, 수학과 과학 양쪽 모두 압도적인 실력이 아니면 접근 자체가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 정도 수준의 학생이라면 연세대 논술보다 정시를 노리는 편이 훨씬 효율적입니다(출처: 연세대학교 입학처).
고려대 자연계열 논술은 확률과 통계와 기하가 출제 범위에 포함됩니다. 확률과 통계란 수능 수학에서 선택 과목으로 분류되는 단원이고, 기하란 도형과 벡터, 이차곡선을 다루는 단원인데, 고려대 논술에서는 수능 모의고사 28~30번 수준의 고난도 풀이를 80분 안에 해결해야 합니다. 타임어택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중앙대 창의형 논술은 재학생만 지원 가능하고 수능 최저가 없습니다. 수능 최저가 없으니 인문계열 수학이 약한 학생도 지원할 수 있어 보이지만, 제가 데이터를 살펴보니 실제 합격자는 원래 연고대를 목표로 준비했던 수학 상위권 학생들이었습니다. 수능 전에 시험이 있어서 잘 봤다는 착각이 수능 준비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저로서는 가장 우려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이 현실들을 정리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대학들이 논술 전형에 걸어둔 수능 최저기준과 출제 방식은, 논술 본래의 취지인 논리력·사고력 검증이 아니라 사실상 변형된 정시 전형에 가깝습니다. 수만 명의 지원자로부터 전형료를 수취하면서 절반 이상을 최저 미충족으로 걸러내는 구조는 수험생에게 이중의 부담을 지우는 것입니다. 논술이 공교육 안에서 정당한 대입 통로가 되려면, 최저 기준을 현실화하고 문항 난이도를 고교 교육과정 범위 내로 조정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논술 전형은 내신이 낮아도 합격할 수 있나요?
A.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 논술 전형은 내신 반영 비율이 낮거나 없습니다. 그러나 수능 최저학력기준이라는 더 높은 장벽이 존재합니다. 내신과 무관하게 수능 등급 합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논술 점수와 관계없이 불합격입니다. 내신이 낮더라도 수능 성적이 탄탄해야 한다는 사실, 혹시 이미 알고 계셨나요?
Q. 수능 준비 중에 논술 특강을 병행해도 되나요?
A. 제 경험상 파이널 시기에 논술 특강을 병행하다가 수능 리듬이 무너진 학생들을 해마다 목격했습니다. 가채점 결과가 목표 대학의 최저를 안정적으로 충족하는 수준이라면, 그때 수능 후 남은 시간을 활용해 집중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수능 전에 논술 준비로 시간을 분산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Q. 연세대 논술은 수능을 안 쳐도 지원할 수 있나요?
A. 2026학년도 기준으로는 수능 최저가 없어 수능 미응시자도 지원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2027학년도부터는 최저 기준이 도입되므로, 수능 미응시 상태로 연세대 논술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입니다. 자연계열의 경우 통합과학 논술까지 대비해야 하므로, 지원 전 본인의 수학·과학 실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Q. 한양대 논술이 그나마 도전해볼 만하다는 말, 사실인가요?
A. 한양대 논술은 수능 최저가 없고, 수능 후 약 일주일의 준비 기간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능 직후 지쳐있는 상태에서 90분이라는 짧은 고사 시간 내에 자연계열 기하 고난도 문항을 풀어야 한다는 현실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유의미한 선택지라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Q. 성균관대 수리형 논술은 출제 범위가 좁아서 유리하지 않나요?
A. 수리형 논술이 미적분·확통·기하를 제외하고 수학Ⅰ·수학Ⅱ 범위만 출제한다는 점에서 유리해 보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출제 범위가 좁다는 사실은 응시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오히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싸우기 때문에 실력 변별이 더 치열해지고, 논술이 주관식이어서 만 단위 계산 실수 하나로도 득점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범위가 좁다고 쉬운 전형이라는 판단은 금물입니다.
결론
제가 수년간 진학 상담을 하면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논술 합격 전략은 수능을 압도적으로 잘 봐서 고사장에 아예 가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엔 반응이 없다가, 데이터를 펼쳐 보이고 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연세대부터 중앙대까지, 상위권 대학 논술 전형의 수능 최저를 충족할 실력이라면 정시로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성적대입니다. 이 여름방학이 수능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시간입니다. 어설픈 논술 특강이나 학생부 역전을 기대하며 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논술은 선택이지만, 수능은 모든 전형의 기반입니다.